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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의 세월이 가져다준 애정이며 넷째 나는 그녀 없이 살아갈 수 없고 물 론 이는 푸념에 지나지 않으며 그러나 갑자기 모든 것이 심각해졌으며 우리는 어떻게든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즐거운 일은 전혀 찾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서 지금을 더 소중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용기를 더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과 이를 대처해나갈 용기

삶을 이어나가는 일이란 불합리할 뿐이며 타코닉 근처의 병원에서 엘리자베스가 유방 절제술을 받기 전날 밤 슘페터는 일기장에 또 긴 글을 썼으며 그에게는 또다시 자살에 대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으며 바로 내일이 수술이며 나의 일기에는 용감한 여자인 아내에게 고된 시련이 찾아왔을 때 일어난 모든 일과 이를 대처해나갈 용기에 관한 내용은 없고 그리고 이는 최후를 예고하는 징조의 시작이며 나는 이 사실을 심각하게 이야기하거나 기록하고 싶지 않고 단지 매우 심각할 뿐이며 사람들은 가라앉고 있는 배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며 그리고 더 이상의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조그만 종이 몇 장과 중요한 편지만이 있을 뿐이며 지금 넌 무얼 가지고 있는가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믿기지 않는 것은 공허함과 무시무시함이며 죽음을 피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닌 게 분명하다 혼자 가버리지 그래 나는 엘리 자베스가 세상을 떠나야만 할 때 그녀를 가엽게 여기지 않을 것이고 그녀 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으며 그러나 슘페터에게 매우 놀랍고 위안이 될 만한 소식이 있었으며 엘리자베스 혁신의 예언자의 수술과 그 뒤의 방사능 치료가 성공적이었으며 병세가 나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엘리자베스는 이전처럼 건강하고 활기가 넘쳐흐르진 않았지만 불치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다른 암환자들처럼 병의 재발을 걱정해야 했고 한편 슘페터는 엘리자베스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욱 신경 쓰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엘리자베스가 그녀 자신에게 실망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더욱더 주의를 기울였고 슘페터는 일기에 많은 시련을 겪어온 엘리자베스를 두고 이 가엾은 어린이라고 표현했고 사실 그녀는 모리스 피루스 키와 결혼했으나 실패했고 또 일본에서 연구활동 가운데 겪은 극도의 좌절 슘페터에게 관심받지 못했던 일 그리고 삶을 위협하는 현재의 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련을 겪어왔으며 슘페터는 암담한 현실을 극복해나갈 힘을 얻기 위해 어 머니와 애니에게 간절히 호소했고 그리고 신에게 기도했고 제가 그녀를 도울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넘어지지 않고 짐이 되지 않게 해 주세요 그 뒤 몇 달 동안 슘페터는 엘리자베스가 죽을 때를 대비해 가끔씩 자신의 자살 가 능성을 언급하곤 했습니다.

출처:픽사베이

경제 이론을 실리적인 관점

봄이 되자 엘리자베스는 슘페터가 극진하게 보살펴준 덕분에 휘턴 칼리지에서 다시 강의할 수 있을 만큼 상태가 많이 좋아졌으며 엘리자베스는 여전히 과로를 조심해야 했지만 타코닉의 육아 시설 타코닉에서 슘페터를 보살 폈던 엘리자베스의 역할을 지은이가 비유적으로 표현했다에서 다시 일하게 된 것 을 기뻐했고 엘리자베스의 병만이 슘페터를 삐뚤어지게 한 것은 아니었고 년대에 슘페터는 자주 일기장에 하버드대 상황에 불만을 토로했고 엘리자베스가 유방암 판정을 받기 년 전인 년 슘페터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으며 나는 왜자 신에 대해 역겹게 느끼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슬픈 것일까 나는 왜 다른 사람들과 공통점이 없다고 느끼는 걸까 이것은 더 이상 나의 세계 제장 영광과 위기 가 아니야 또 그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 슘페터는 문명이 파괴되고 있는 것을 슬퍼할지 모르며 그러나 하버드대는 이를 비웃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심지어 그는 종종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하버드대를 비판하는 편지를 쓰기 도 했고 쓰루 시게토重都留는 당시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제차 대전에는 슘페터의 제자였고 그는 스승인 슘페터에게 가능하면 하버드대를 방문하겠다 는 입장을 편지로 전했고 그러나 슘페터는 그의 하버드대 방문 계획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물론 하버드대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언제나 아름답게 보일 수 있네 그러나 하버드대에 아주 가까이 있는 나로서는 하버드대 주변 환경 속에서 어떤 자극적인 것을 경험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네 실질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바실리 레온티예프만이 살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지 비록 그가 현재 엄청난 양의 행정 업무에 매몰되어 있긴 하지만 행정 업무가 그의 삶을 크게 차지하진 않아 자네가 이미 알고 있는 근본적인 생각 방법 접근 그리고 독창적인 업적은 보스턴이나 도쿄에서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일 세 전쟁이 끝나자 군인으로 참전했던 학생들이 복학했고 하버드대 재학생 수 가 급증했고 학내 다른 과와 마찬가지로 경제학부는 이러한 새 상황에 대처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슘페터도 마찬가지였고 슘페터에게 등록한 학생의 급격한 증가는 곧 그가 읽어봐야 할 과제와 시험 답안지가 더욱 늘어난다는 의미였고 또 상담 시간이 길어지고 행정 업무 처리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슘페터의 강의를 들었던 한 학생의 회고에 따르면 하버드대에 새로 등록한 학생 가운데 다수가 기혼자였고 따라서 대 부분의 학생이 학문 연구보다 경력을 매우 중시했고 서둘러 직장에서 일을 시 작하길 원했고 그들은 경제 이론을 실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으며 하버드대 경제학부를 조만간 미국 내에서 내로라하는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일종의 혁신의 예언자 수단으로 여겼다 슘페터는 학생들의 이러한 관점을 증오했고 슘페터는 새뮤 얼슨 마게츠 스미시스 후버 매 클럽 메이슨 해리스 체임벌린 스위지 슈 톨퍼 같은 학자들과 비교해볼 때 이런 점에서는 역량이 부족했고 교수진과 학생들 모두 저마다의 적절한 역할을 수행했으나 그들 사이의 유대감은 학부의 규모가 작았을 때보다 약했고 으 이처럼 달라진 생활이 고착화되면서 주목할 만한 사건 하나가 벌어졌으며 슘 페터와 그의 친구이자 옛 제자인 스위지가 벌인 공개토론회였고 유명해졌습니다.

 

그에 걸맞은 훌륭한 사회자가 있어야 마땅

모건 은행 내 중역의 아들이었던 스위지는 확고한 마르크스주의자로 그 당시 최고의 경제학자였고 년 보스턴 사회주의 클럽은 하버드대 경제학부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비교하는 토론회 개최를 요청했고 당시 슘페 터의 책자 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가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경제학 부는 슘페터에게 토론회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했고 그러자 슘페터는 하버드 대 대학원 경제학 클럽에 공개 토론을 위한 지원을 부탁하겠다고 사회주의 클럽에 전했고 하지만 대학원 경제학 클럽은 이 지원을 거절했고 그러자 슘페 터는 할 수 없이 하버드대 리타우어 센터의 공개 토론에 후원자 없이 참여하 기로 결정했고 리타우어 센터 강당에 슘페터와 스위지가 자리했고 훗날 새뮤얼슨은 이날 벌어진 공개 토론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고 훌륭한 토론자에게는 그에 걸맞은 훌륭한 사회자가 있어야 마땅하며 그날 밤 레온티예프는 공개 토론을 순조롭게 이끌었고 현재 자본주의가 폐단을 안고 있으며 과연 자본주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사실 우리 두 토론자께서는 자본주의의 종말은 필연적이 라는데 동의하셨으며 그러나 두 토론자가 판단을 내린 근거는 매우 달랐으며 스위지 교수는 자본주 의라는 이름의 환자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끌어내는 데 마르 제장 영광과 위기 크스와 레닌의 분석을 활용했으며 한편 슘페터 교수의 입장을 살펴보면 슘페터 교수도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환자가 죽어가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정했으며 하지만 슘페터 교수는 자본주의가 심신증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보았으며 이는 자본주의가 앓고 있는 병이 암이 아니라 신경증상 노이로제이라는 주장이고 자기혐오로 가득 찬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환자는 사실상 삶의 의지를 잃었다는 주장인데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자본주의는 사랑스럽지 못한 체제이고 사랑스럽지 못한 것은 사랑받을 수없으며 폴 스위지 교수 자신은 바로 자본주의라는 환자의 죽음을 꽉 막힌 정신착란의 요인이자 전조라고 봤으며 스위지와 슘페터의 개막 연설이 있은 뒤 진행자인 레온티예프는 청중을 토론에 초대했고 부인 엘리자베스 슘페터가 일어나 몇 가지 코멘트를 던졌으며 그러자 스위지는 슘페터가 가족 가운데 힘이 센 사람에게 의지해 토론 진행의 정신을 어겼다고 농담을 던졌으며 결국 슘페터는 자기보다 어린 친구 스위지가 토론에게 이겼다는 것을 인정했고 토론장의 모든 사람은 즐겁게 집으로 돌아갔고 슘페터는 하버드대에 전반적으로 환멸을 느꼈고 그러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열정은 변하지 않았고 학부생들은 슘페터가 자신들이 입학해 서 강의를 들을 만한 가치가 가장 많은 열정적인 교수라고 계속 느꼈고 대학 원생들도 슘페터를 매우 존경했고 년대 대학원생들은 교수 인기투표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슘페터를 최고로 뽑았습니다.

 

사랑스럽지 못한 체제가 있을 수 있으며 자본주의는 득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하고 후원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없이 일을 진행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그것을 해내는 것이 진정한 사업가 아니겠는가 싶으며 필연적으로 위기를 극복하여 해결력을 길러가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사랑을 가지고 사람을 보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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